[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우린 술 없는 새내기” 서울대 700명 콜라 건배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우린 술 없는 새내기” 서울대 700명 콜라 건배이옥진 기자 평창=원선우 기자(조선일보)입력 : 2013.01.21 03:01 | 수정 : 2013.01.21. 10:47

 

“술판 신입생 행사는 그만” 2박3일 오리엔테이션 무알코올·무사고로 끝마쳐
“학과·단과대 환영회도 술 마시지 않았으면…“

 

“소주 대신 사이다로! 포도주 대신 포도 주스로! 맥주 대신 콜라로! 우리가, 바로, 술 없는 새내기!”

18일 밤 11시 강원도 평창군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대강당. 서울대 신입생 김인겸(19·농경제사회학부)·오재원(19·의예과)군이 ‘술 없는 새내기’를 부르자 신입생 700여명이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개그 그룹 ‘용감한 녀석들’의 노래를 패러디한 두 학생의 열창에 강당은 열기로 가득 찼다.

“프로그램과 게임이 정말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예요. 굳이 술 마셔야 하나요?”(통계학과 신입생 공인성군·18)

이날 행사는 서울대의 첫 ‘술 없는 합숙 오리엔테이션’이었다. 1990년대 초반 단과대학별로 합숙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 이래 그동안 술이 빠진 적은 없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2009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집에 ‘폭탄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학교 차원 오리엔테이션이 처음 열렸던 지난해에도 캔맥주가 하나씩 제공됐고, 술을 많이 마신 학생도 있었다.

 

▴서울대에서 합숙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 이래 처음인‘술 없는 신입생 합숙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18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대강당에서 신입생 700여명이 그룹‘바닐라시티’의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서울대 신입생들은“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2박 3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은 신입생을 이끈 재학생 멘토단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멘토단은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자리에서 과음으로 부담을 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술에 해롱거리는 새내기 행사를 끝내자”고 했다.

40개 반으로 나뉜 신입생 700여명은 오리엔테이션 2박 3일(17~19일) 동안 술 대신 ‘놀이’로 일정을 짰다. 오리엔테이션의 백미(白眉)라던 2일째 밤엔 술 잔치 대신 놀이 잔치가 열렸다. 술 대신 음료수와 과자 가루를 섞은 ‘무알코올 의리주’가 등장했고, 한 달 전부터 선배 멘토가 준비한 게임이 계속됐다. 신입생 지유정(20·간호학과)씨는 “대학 가면 동기들이나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무서웠다”면서 “나처럼 술 못 마시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멘토 배다혜(24·작곡과 4년)씨는 “‘술이 없으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신입생들이 있을까 걱정돼 게임 계획을 치밀하게 짰다”며 “실제로 신입생들이 ‘술 없이도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멘토단은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양파링 옮기기’ ‘국가 수도 맞히기’ 등 20여 가지 게임을 마련했다. 사회대 신입생 김모(19)양은 “학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은연중 술을 권하는 선배들 때문에 난처했다”며 “단과대 학생회가 주최하는 신입생 행사에서도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술 없이도 즐거워요.”18일 2박 3일간의‘술 없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서울대 신입생들이 술 대신 음료수로 건배하고 있다. 신입생들은“술을 마시지 않아도 공연·게임을 통해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서울대에서 과(科)·단과대 단위의 합숙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 이래‘술 없는 합숙 오리엔테이 션’은 처음이라고 서울대는 밝혔다. /이진한 기자

 

서울대뿐 아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2009년부터 술 없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리기용 학생복지처장은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을 전국 최초로 한 뒤 강원도 내 대학 절반이 우리를 벤치마킹했다”며 “연세대 신촌·송도캠퍼스도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뿐 아니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 술 문화 개선 움직임도 한창이다. 전국 60개 대학엔 최근 캠퍼스 주폭을 감시·예방하는 절주 동아리가 생겼다. 순천향대 ‘쏘쿨이(소주와 쿨하게 이별하는 법)’는 음주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이색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협성대 ‘낮은飮 자리’는 절주 플래시몹으로 학생뿐 아니라 시민에게도 절주 캠페인을 펼쳤다. 이들의 활약으로 순천향대엔 교내 잔디밭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교칙이 생겼고, 협성대에선 주류 업체의 술 무상 제공이 금지됐다.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서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술 추방”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서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술 추방”

양승식 기자 원선우 기자 (조선일보)

재학생 멘토단이 제안… 술 없는 과·단과대 환영회도 가능할까

서울대가 2013학년도 신입생 2500여명(수시모집·정원외 포함)을 대상으로 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술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인 ‘새내기 대학’은 지난해부터 전(全) 신입생을 대상으로 만든 2박3일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오는 17일부터 강원도 평창의 국립수련원에서 열린다.

그동안 서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술이 빠진 적은 없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2009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집에 ‘폭탄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새내기 대학이 처음 열렸던 지난해에도 “그래도 대학생이 됐고, 서로 사이가 서먹할 수 있으니 술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와 학교 측에서 신입생들에게 맥주를 1캔씩 제공했다. 개별 멘토 학생들이 술을 더 구해와 신입생들과 술을 마신 경우도 있었다. 서울대 관계자는 “당시 많은 술이 오간 조(組)도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서먹서먹함을 없애기 위해 그런 것인데, 술을 마셔야 하는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낀 신입생도 있었다”고 했다.

‘술 없는 새내기 대학’ 제안은 학교가 아닌 재학생 ‘멘토단’에서 나왔다. 멘토단은 최근 “술 한 방울 없는 행사를 만들겠다”면서 “술에 해롱거리는 새내기 행사는 끝낼 때가 됐다”고 학교 측에 제안했다. 멘토단 이진열 단장(종교학과 4년)은 “엠티를 가면 새내기들과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술을 안 마시는 학생은 절대 낄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을 봤다”면서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자리가 이런 부담스러운 술자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내기 대학은 90명의 멘토단이 조별로 나뉜 신입생들과 합숙을 하며 대학 생활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멘토단은 “술을 빌려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보다 오히려 간식거리만을 통해 신입생 융합을 이끌어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주로 술을 마시는 저녁 시간대를 겨냥해 팀워크를 다지는 장기자랑과 술이 없어도 새벽 시간까지 즐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 김영오 학생부처장은 “최근 신입생들은 예전처럼 ‘먹고 죽자’식의 분위기가 아니다”면서 “술을 점점 멀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학생들 스스로 읽어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캠퍼스 술문화에서 가장 큰 문제인 2월 말 있을 과·단대 단위의 신입생 환영회 행사에도 이번 결정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